한상진 교수 "대중 정치도구 전락… 3대 사회적 대화 시작하자" (2022.07.11.)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기본적으로 투표는 유권자의 계급 내지 집단 이익에 따라 행사된다. 근데 지난 대선에선 이런 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보다는 개개인의 ‘감정’이 투표 행사의 강한 동기가 됐다. 민주당에 대한 증오, 문재인 전 대통령 등을 비롯한 전 정권에 대한 응징의 심리가 사람을 결집시켰다. 그 반대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의의 경쟁이 아닌 증오의 대결이었다. 0.7%포인트 차로 당락이 결정된 이유다. 이런 식의 정치·사회 구조는 사회 구성원들의 공존을 어렵게 만든다. 지금의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진보진영의 대표 원로 학자로 평가받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이끄는 '(재)중민재단'에서 최근 새롭게 시작한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며 내놓은 말이다. 한 교수가 거론한 이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코로나19 사태 전후로 겪은 사회적 위험, 소외, 상처 등의 경험·생각을 플랫폼에 직접 기록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 교수는 “학술 연구만으론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며 “사회적 캠페인이나 시민 참여, 대화 프로그램을 통해 올바른 ‘자발적 시민운동’을 양성하고 구조적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보려고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 참여가 올바른 방식으로 이뤄졌을 때 현 정치권에서 나타나는 양극화·분열의 문제도 해결될 거라 보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서울 관악구 중민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한 교수는 이런 일련의 프로그램 설명과 함께 지난 대선 평가, 민주당의 과제·미래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사회포용대화’ ‘위험파수꾼’ ‘세대공감’
한 교수가 최근 주목하는 사회현상은 앞서 언급했듯 시민운동의 그릇된 양상과 이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다. “건강한 사회는 시민들의 올바른 자발적 사회 참여에서 비롯된다. 이는 ‘주류’(중산층)라 분류되는 계층과 ‘하류’ 계층이 어떤 식의 사회 참여 양상을 취하느냐로 따져볼 수 있다. 주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할 때, 하류에 있는 사람들이 복지 혜택 수용을 넘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직접 국가에 요구할 때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하류 계층의 경우 복지 혜택을 수용하는 것에만 머물면 권력에 복종만 할 우려가 크다는 분석도 여기에 녹아 있다.”
하지만 현재는 이런 올바른 참여 양상이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한 교수의 진단이다. “상류 계층은 배타적 이익 추구로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고, 하류 계층은 이로 인해 되레 사회·정치적으로 동원만 되고 있다. 자신의 의견이나 사고를 개진하는 것이 아닌 증오와 분노의 형태로 감정을 표출하는 개체로 전락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에 한 교수는 재단 차원에서 ‘3대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이라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크게 ‘사회포용대화’ ‘위험파수꾼’ ‘세대공감’의 이름으로 각각 전개되고 있는데, 최근 사회 모든 분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위험, 고통, 소외 등을 경험한 계층이 직접 자신의 경험담, 문제의식을 재단에서 마련한 플랫폼에 기록·고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시민들의 ‘직접 참여’다. 한 교수가 10년 넘게 재단 차원에서 연구해온 ‘중민’, 즉 중산층에 속하면서도 기존의 제도·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합리적 개혁을 추구하는 시민집단을 대상으로 한 또 하나의 연구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관련 결과물을 여타 연구집단과 공유하여 또 다른 자료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점차 위험사회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시민 참여 확대로 담론을 모으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 같은 실험으로 시민들의 잠재성을 키우고 올바른 사회 참여 방식을 정착해보고자 한다.” 여기서 사회포용대화와 위험파수꾼 프로그램은 플랫폼 기록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포용대화는 기록 주체를 NGO(비정부기구) 등 집단으로 한정하고, 위험파수꾼은 개인으로 두고 있다. 세대공감 프로그램은 기록 대상 내용을 개인 가정으로 제한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는 “이미 일부 굵직한 사회보호기관이 함께 참여해 기록물을 내놨다”며 “크라우드펀딩 등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프로그램 참여를 확대하고 코로나19로 광범위한 탈바꿈이 일어난 지금 상황에서의 또 다른 연구 기반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이념으로만 밀어붙이다 선거 패배”
한 교수는 최근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 즉 자발적 시민운동 실험은 더 중요해진다고 본다. “현 정치권만 해도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다. 공통된 가치 추구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좀처럼 조직화되지 못하고 번복, 갈등만 거듭한다. 지금의 민주당에서 개딸(개혁의딸·이재명 의원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2030 여성층을 일컫는 말), 양아들(양심의 아들, 이 의원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2030 남성층)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도 결국 양극화, 정치적 동원에 따른 결과다. 앞서 언급했듯 지난 대선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한 교수는 제3지대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기 어렵다고도 말한다. 한 교수는 2016년 안철수 의원과 함께 중도 정치를 표방한 제3정당인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하기도 했었다. “한때 3지대 정치를 거론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중도에서의 자발적 참여가 성장하길 바랐다. 지금의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힘 쪽으로 넘어가 중도정치 지형이 줄어든 측면이 있지만, (안 의원의 선택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거기서 3지대 정치를 위한 공간이 어떻게 마련될지, 향후 당 체질 개선으로 안 의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지, 이로 인해 3지대 가능성이 어떻게 발현될지는 지켜볼 영역이라 본다. 당초 원래 지키려 했던 위치를 끝까지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큰 건 사실이다. 민주당에선 경북 출신의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3지대 정치를 이끌 차기 리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진보 원로 학자로서 현 민주당에 대한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선거 패배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의 민주당 분위기는 이를 사실상 안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평가는 유권자 및 지지자 입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당 지도부 입장에서 하면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려운데, 지난 2012년 내가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을 때도 그런 식이었다. 민주당이 집권 후 추구했던 가치와 방향성은 옳았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론이 부재했다. 누군가 이념으로 밀어붙이면 그냥 따라가기만 했다. 선거 패배의 이유다.”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을 주축으로 한 세대교체론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 전망을 내놨다. “97그룹의 세력이 부족하다. 개인 몇 명으로만 그치고 있다. 당을 쥐고 있는 586세대가 공통된 세계관과 가치로 똘똘 뭉쳐 있는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이들은 정치적 오류나 위기에도 쉽사리 퇴진하지 않으려 한다. 세대교체는 말 그대로 민주당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 교수는 새롭게 집권한 윤석열 정부가 시민사회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길 바란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경제, 안보 등도 당연 중요하다. 다만 한국의 시민사회에 더 주목해줬으면 한다. 분명 선진화되고 논쟁적이며 활력 있는 면모를 갖고 있다. 시민사회가 활발해지면 그것 자체로 사회 발전의 자양분이 된다. 현 시민사회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회계감사 정도인데, 이보다는 사업의 성과와 효과를 측정하는 데 집중해주길 바란다. 그래야 더 자발적인 시민운동과 실험이 곳곳에서 이뤄질 수 있다. 이미 3섹터에 대한 정부 자금은 상당히 큰 규모로 책정돼 있다.” 기사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