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權威主義) 청산의 조건
권위주의의 기본 골격(骨格)
권위주의는 우리사회의 오래된 문화적 유산과도 밀접히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특히 유신체제 이래 민중억압과 배제가 심화되면서 우리의 삶을 무겁게 짓눌러온 악성(惡性)권위주의 유산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과제가 초미의 관심을 끈다. 다행히 노태우(盧泰愚)차기대통령은 권위주의의 청산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이를 위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미리 유념해야 할 점은, 말은 쉽지만 결실은 결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권위주의는 이미 우리 모두의 체질이 되어 있으며, 이 땅에 수십년동안 지속된 체제의 본질적 성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체제의 비리와 반민중적(反民衆的) 형태는 앞으로도 계속 터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야말로 살을 도려내는 자체 숙청의 과감한 의지와 실천이 없이는 또 이것을 끝까지 밀고 가는 집합적인 힘과 지구력 없이는 개혁은 머지않아 관료주의란 괴물에 먹혀 빈껍데기의 수사학적 상징으로 전락할 위험이 다분히 있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이런 전철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의지도 중요하고 개혁의 거점을 확산시켜가는 입체적 전략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권위주의의 정체를 올바로 인식하고 지엽적인 문제와 씨름할 것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중심적문제와 대결하면서 대안을 추구하는 진지한 과학적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권위주의의 한국적(韓國的)특징
주지하다시피 권위주의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관료적 권위주의’라고 하는 것으로서, 군부·행정·재벌기업의 고위층이 서로 제휴하여 위로부터 국정을 이끌어가는 형태를 뜻한다. 이러한 관료적 권위주의의 일반적 특성으로는 민중배제가 단연 중요하다. 부연하자면 참여를 원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우선 정치적으로 소외된다. 이것은 예컨대 선거와 정당제도의 실태를 보면 분명해 진다. 또 노동 3 권의 억압에서 드러나듯이 민중의 경제적 배제도 심화된다. 이익집단, 중간집단 또는 사회운동조직들이 무력해지거나 어용화 된다는 의미에서 민중의 사회적 배제도 확인된다. 이런 맥락에서 밑으로부터의 의사를 대변하거나 수렴하는 제도 및 통로는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그동안 관료적·권위주의적 지배가 체질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우리 사회에 독특한 점도 있다. 첫째로는 권력의 집중화 정도가 대단히 강하다는 것이다. 권력이 대통령 개인에게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청와대가 정부 안의 정부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온 것이 사실이다. 둘째로는 군사문화적인 획일성이 국가기구와 시민사회 안에 지나치게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이 결과 정치의 고유한 역동성이 사리지고 군사작전화(軍事作戰化)되었다. 다시 말해 위로부터의 명령이 떨어지면 제시된 목표의 조기 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과 자원을 총동원해가는 체질이 심화되었던 것이다. 셋째로는 갈등의 양상이 전면적인 대결로 나타남으로써 타협과 공존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갈등을 죄악시 하는 권력층의 편견이 병적으로 심화되었다. 이것은 남북분단의 현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나친 것으로서 체제의 경직화를 촉진시켰음에 틀림없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희망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인이 관료체계 안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과료가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수한 능력과 양식을 갖춘 인재가 적지 않게 있으며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관료적 합리성’이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책의 목표와 수단을 선정함에 있어 위로부터의 지시나 간섭 또는 옆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합리성이 장애를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관료체계가 부정부패로 물들고 비효율화된 다른 개발도상의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합리성을 앞으로 어떻게 더욱 신장시키면서 권위주의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할 것인가를 다각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권(人權)억압 기구의 개혁
그러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해 보겠다.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보통 ‘자유화’의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고 한다. 일반시민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화의 의미는 기본인권의 보장과 확립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체의 자유는 인간적인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은 이 신체의 자유를 위협하는 조직들, 말하자면 신체를 가두고 때리고 고문하는 강제력을 전문적으로 행사하는 조직과 그 지도자들이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는 막강한 권력의 위치를 장악한다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조직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그 위에 있는 특수기관은 보통 베일에 가려 있다. 어디서나 이들 조직에 의한 인권유린은 체계적이고 가혹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실태의 일면은 우리사회에서도 근래의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여기서 확인되듯이 우리가 극복해가야 할 권위주의는 바로 공권력이 폭력과 고문을 행사하는 것이 체질화된 체제이다. 신체의 자유를 짓밟는 수사상의 관행이 정착되어 있고 관성으로 반복되면서 어쩌다가 비리가 폭로되면 조직의 위계질서에서 위아 아래가 이것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데 다 같이 협조하는 것이 생리가 되어 있다. 이러한 조직의 생리와 관성은 쉽게 타파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권위주의 청산의 첫 번째 관문으로서 인권억압이 체질화된 국가기구들을 어떻게 개선해갈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가 지적될 수 있겠지만 우선 강조할 점은 억압된 인권을 회복하고 신장시키는 제도적·법제적 개선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피의자의 연행으로부터 시작하여 수사·구속·재판·교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피의자의 인권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미비점이 모두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폭력과 고문은 공권력의 존립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것인 만큼, 이것의 추방을 약속하는 윤리헌장과 같은 것을 만들고 이에 따른 행동수칙을 발전시키며, 이를 어기는 행동에 대해서는 법적·제도적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공권력의 명실상부한 정치적 중립화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힘없는 사람에게는 위압적이고 힘 있는 사람에게는 꼼짝 못하는 그런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라, 법 앞에는 聖域이 없다는 자세로 엄정한 중립성과 객관성을 지키는 그런 경찰과 검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공권력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개혁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권력에 이미 순치되어 있지 않은 인재, 즉 권력의 눈으로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으로 공정하게 보고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인재가 조직의 중심부에서 일하도록 인사가 이루어져야하고, 또 이에 도움이 되는 제도들을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일 인권억압의 비리가 생긴다면 그 원인을 발본색원하는 지도자의 단호한 의지와 실천이 요구된다. 역사적 경험에서 보자면 이런 과감한 자기혁신과 수술의 노력이 반복되면서 비로소 인권억압의 권위주의 유산이 극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직(組織)의 활성화 대책
다음으로는 관료조직의 합리성을 신장시키는 방향에서 권위주의 청산의 문제를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첫째로 강조할 점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특수기구의 기능을 대폭 축소 합리화하면서 정부 각 부처 및 조직의 자율성을 신장시켜가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안기부 등 정보기관이 대표적인 보기로서, 이들의 문어발식 개입기능의 확장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특히 안기부 등 정보기관은 본래의 기능에 맞도록 고도의 전문성을 키워가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둘째, 조직의 자율성을 신장시키려면 조직 내부의 인사권이 응당 그 조직의 장에게로 귀속되어야 한다. 위로부터 낙하산식으로 인사가 결정되거나 옆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인사가 불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화합과 사기앙양에 해로운 것은 없다. 예컨대 유신사무관 제도나 군장성 출신을 무분별하게 공기업이나 국가기관의 책임자로 예우한 관행이 그동안 해당 조직의 전문성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많은 비능률과 손실을 가져왔으며 관료들 사이에 불만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셋째, 공정하고 진전적인 인사정책을 위해서는 민주화 시대에 걸 맞는 인사의 기준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웃사람의 눈치나 잘 보고 아부하는 데 소질 있는 사람이 승진을 하고서야 권위주의는 청산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위에는 굽실거리지만 아래를 향해서는 위압적인 성품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청렴하고 책임의식이 강하며 민주적인 리더십을 갖춘 인재가 승진할 수 있도록 이에 맞는 새로운 평가체계가 개발되어야 한다. 어쩌면 현재 관행화 되어 있는 감사의 기능을 이런 안목에서 대폭 개선해보는 것도 생각해 볼만한 과제이다. 다음으로는 조직내부의 민주적 개혁과 생존권 확보를 포함한 불만해소책이 시급히 요망된다. 공직자의 자화상에 대한 얼마 전의 조사결과를 보면,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 태도가 관료사회에 아직 팽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인사·신분보장·조직내부의 인간관계 등에 관해 많은 불만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막연히 의식개혁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관료들이 긍지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처우개선과 조직의 민주적 개혁에 지혜를 모아야 할 줄 안다. 특히 조직내부의 의사형성과정에서 토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이렇게 형성된 합의는 어느 개인의 독단보다 더욱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권위주의에는 위만을 보는 해바라기적 성격이 대단히 강하다. 획일적이고 군사화되어 있으며 일반시민과 민중에 대해서는 위압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권력의 지나친 집중화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권력분산의 원칙하에 각 조직의 자율성을 신장시켜 가나면 새로운 공직윤리에 의해 권위주의의 유산이 차차 극복되리라 전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개혁(改革)의 구조적 조건
마지막으로 권위주의 청산이 어떤 구조적 조건하에서 가능해지는가를 살펴보자.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확고하고 민주개혁에 적합한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며 이들에 의해 권력분산과 조직의 자율화가 적극 추진된다 하더라도, 또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의해 의식개혁이 추진된다 하더라도, 이런 운동이 관료체계의 힘으로만 전개된다면 머지않아 단명해질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권위주의 청산을 위한 첫 번째 구조적 조건으로서 우리는 강력한 야당의 비판적 활동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현실에서 야당의 약화는 권위주의 청산을 그만큼 어렵게 만든다. 두 번째 조건은 언론의 비판 기능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권위주의로부터 파생하는 인권억압 등 비리를 사회적 쟁점으로 끊임없이 부각시키는 언론이 있어야만 그 압력에 의해 정부·여당의 개혁의지가 지속될 수 있다. 세 번째 조건은 시민운동·노동운동·민중운동이 힘차게 전개되는 것이다. 또 대학 등 교육제도가 민주적 시민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과감히 탈바꿈해가야 한다. 권위주의의 청산은 원래 집권층의 의지나 선의만으로는 충분한 결실을 맺기가 어려운 것이며 체제도전적인 급진운동의 압력 속에서 시민권의 도입으로 집권층이 새로운 발전의 지평을 확보하려고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부·여당은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력하고 책임 있는 야당·언론·대학·민중운동이 다 같이 국가발전에 공헌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들을 선의의 동반자로 포용하는 아량과 지혜를 기대하고 싶다. 끝으로 권위주의의 청산은 그 자체가 완결된 목표라기보다는 보다 원대한 국가 발전목표를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치권력의 기반이 상류층에 있으면 그 권력은 민중의 저항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강압적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민중의 지지를 받게 되면 그 권력은 갈등을 조정하는 방식이 유연해지기 때문에 약한 듯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훨씬 강한 힘의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강한 정부=권위주의 정부’라는 등식에 우리가 이 이상 압도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민주정부=강한 정부’라는 새로운 등식을 입증할 때가 된 것이다. 권위주의 청산은 우리에게 당면한 소극적 목표이며, 이로부터 출발하여 민중 억압적 체제의 기본성격을 과감히 버리고 민중융합의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더 나아가 대내적 평등과 민족통일을 추구해 나가는 벅찬 새 시대의 과제를 향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역사적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신문(1988년 1월 26일, 한상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