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전환기의 논리
작성자   HIST 작성일 2009-07-13 15:34:43 조회수 1985

현재의 정국을 보자면 여든 야든 간에 일을 제 때에 성사시키기 보다는 그야말로 벼랑의 마지막 끝까지 가는 동안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때 가서 비로소 한판의 승부를 걸든지 아니면 극적으로 타협할 듯이 기다리는 것 같다. 여기에 국가운명을 걸기에는 이 발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책임 한가.




전환기(轉換期)의 논리



파멸에 이르기 전에


 

슐츠가 한국을 다녀갔다. 개헌문제를 포함하여 전환기의 불확실성이 고조됨에 따라 한국에 대한 미국 조야(朝野)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우려와 경고, 지지와 권유의 발언이 부쩍 느는가 하면 막후의 조정역할도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것은 명예로운 일도 유쾌한 일도 아니다. 깨어 있는 의식으로 현실을 주시하고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이제는 정치인을 탓 할 것만이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국민적인 시각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전환의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점을 확인하고 유념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째, 국민의 변화열망을 청취하여 집권여당도 내각책임제로 민주화의 의지를 표명하고 나선 이상,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호헌론으로 배수진을 치는 것은 결국 국민을 우롱하고 배신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둘째,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되거나 시간이 너무 늦기 전에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의 모습이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인력으로 어떻게 하기 힘든 관성의 법칙이 우리의 운명을 파멸의 길로 몰아 갈 위험마저 있다.
셋째, 대망의 선진조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적 민주화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사회경제적 개혁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중생활에 직결되는 이 개혁은 앞으로 상당한 진통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넷째, 與든 野든간에 극단적인 대결 모델로 눈앞의 정권싸움을 위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가는 것은 서로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집회결사의 기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공권력을 무차별 사용한다든지, 반대로 대중을 정치무대로 과도하게 끌어들이는 것은 다 같이 현재 안에서 미래를 갉아 먹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되면 설사 천신만고 끝에 새로운 체제가 간신히 출범한다 하더라도 이것의 유지에 큰 부담이 따른다. 이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전환기의 관리방식임에 틀림없다.


이런 전환기의 상황에서 문제를 전진적으로 풀어가는 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사회에 많은 인적 자원들이 있고 또 이들의 잠재능력이 대단히 높지만, 그럼에도 이들을 민주적으로 조직하고 이끌어가는 상위의 정치력은 지극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타협이냐 대결이냐


 

한 보기로 현재의 정국을 보자면 여든 야든 간에 일을 제 때에 성사시키기 보다는 그야말로 벼랑의 마지막 끝까지 가는 동안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때 가서 비로소 한판의 승부를 걸든지 아니면 극적으로 타협할 듯이 기다리는 것 같다. 여기에 국가운명을 걸기에는 이 발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책임 한가. 또 막다른 골목에 가서 어떤 타협이 설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힘으로 전환기의 후속상황을 관리하기란 지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에서 전환기의 논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모델이 있는데, 하나는 타협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대결모델이다.
타협모델은 누가 정국을 주도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다소 달라지지만, 만일 정부가 해빙정책을 미리 준비해온 경우라면 대체로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가다가 뒤에 가서 야권이 이것을 계승하는 경향이 있다.
대결의 논리는 어느 시점에서 쌍방이 서로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으로 급격히 부상하면서 서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할 때 나오기 쉽다. 이 때는 어느 측도 자신감을 가지고 정국을 풀어가기가 구조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만성적인 정국의 교착상태에서 긴장과 불안이 난폭하게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85년 2월 총선이래 대립모델이 급격히 나타난 대표적인 보기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타협을 통한 공존은 원칙상 가능하고 또 귀감이 되는 사례들도 있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여-야 지도자들 사이에 불신과 증오가 아직도 매우 강하고 정치문화가 명분이 약한 타협에 비우호적이며 여-야의 권력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국민의 간절한 호소와 미국같은 우방의 집요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장래에 타협이 성사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시간이 너무 늦어지기 전에 국민의 입장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전환의 길을 찾아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진정한 용기(勇氣) 보일 때


 

하나의 길은 여-야 쌍방이 명예롭게 퇴진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가 이기겠다고 벼르거나 나누어 갖겠다고 하면 일은 복잡하게 꼬이겠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비워 물러나겠다고 하면 일은 뜻밖에도 한결 간단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리더십의 공백을 걱정할 것 같으나 우리나라 국민은 깨어있고 인재는 많다. 쌍방이 같이 퇴진하는 위대한 결단으로 밑으로부터 움터오는 온건개혁의 문민정치에 길을 열어준다면, 또 국민의 여망에 따른 개헌을 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건실하고 책임 있는 리더십이 반드시 형성될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나눠 먹기식의 타협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깨끗한 퇴진에는 한없는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특성이 있다. 또한 이 시점에서 명예로운 퇴진은 이 땅에 정치윤리를 소생시키고, 국민화합을 촉진시키는 귀중한 모범이자 거름이 될 것도 분명하다.
진정으로 이 땅에 화합과 약진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현재의 난국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이를 푸는 위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의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이 점을 통찰하여 대승적으로 자기희생의 윤리를 실천해 간다면, 이들은 장차 민주화시대의 격랑을 다스려가는 도덕적 권위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세계만방에 우리의 얼이 담긴 새로운 전환의 논리를 과시하는 영광을 얻을 것이다.




-조선일보(1987년 3월 12일, 한상진)
     3. 2008 정치체제의 소통능력과 민주주의의 질: 국제비교로 본 한국의 현주소
     1. 권위주의 청산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