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타는 목마름으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7-13 11:39:55 조회수 3137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렇게 끝나는 노래를 故 박종철(朴鍾哲)군도 수없이 불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민주화를 향한 목마름은 이 시대에 비단 학생들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새 시대를 향한 갈증으로 부대끼고 있다. 그러나 과연 새 시대는 오고 있는가? 밝아오는 새벽의 여명을 우리는 보고 있는가?


타는 목마름으로


박군(朴君)의 죽음이 남긴 것


‘타는 목마름으로’. 이것은 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의 하나이다. 나도 이 노래는 좋아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렇게 끝나는 노래를 故 박종철(朴鍾哲)군도 수없이 불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민주화를 향한 목마름은 이 시대에 비단 학생들만의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고통이자 희망의 원천이 되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 모든 사람들의 마음 안에 변화에의 열망이 고동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새 시대를 향한 갈증으로 부대끼고 있다. 그러나 과연 새 시대는 오고 있는가? 밝아오는 새벽의 여명을 우리는 보고 있는가?
박군의 참혹한 죽음으로 우리는 인권에 눈을 떴다. 권력의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속성, 형제의 육체를 고문하고 미소 짓는 추악한 모습을 발견했다. 이것은 진정 더러운 일이다. 창피하다 못해 구역질나는 일이다. 이런 일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이렇게 우리는 외치고 있다.
옳은 말이다. 고문은 이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이런 일이 다시 터진다면 아마도 정권은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만큼 정부도 단호히 대처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군의 죽음은 우리에게 보다 더 큰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의 타는 목마름은 우리에게 새로운 파수꾼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것을 나는 윤리의 회복으로 집약하고 싶다. 박군은 윤리부재의 수단 만능주의, 권력물신주의에 의해 희생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권력을 얻기 위해 보든 수단 방법을 무차별 사용하는 것은, 안보의 이름 하에 인간생명을 짓밟는 것과 같이, 윤리부재의 말세적 현상이다. 따라서 박군의 죽음을 참되게 살리는 길은 고문을 추방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사회관계에, 특히 정치에 윤리의 場을 새롭게 여는 데 있다.



정치(政治)의 윤리화 시급



그러기에 나는 다소의 당돌함을 무릅쓰고 정치의 윤리화를 주창하는 것이다.
새로운 윤리적 소명의식으로 태어나지 않는 정치적 리더십은 이제 배격되어야한다. 이것은 구시대의 것이다. 고루하고 낡았을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더러운 것이다. 또한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경멸할 이유가 있다.
비근한 예로 박군의 죽음을 놓고 이것이 개헌정국에 끼칠 영향으로 전전긍긍하는 정부 여당이나, 이것을 정권싸움의 호재(好材)로 보아 미소 짓는 야권의 모습은, 윤리고 뭐고 모든 것을 권력에 종속시키는 권력지상주의의 구태의연한 모습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목전의 이해타산 때문에 정치의 윤리적 기본이 무너진 이처럼 큰 사건을 적당히 흐지부지 넘어가려는 작태나 기껏해야 의사당에서 농성이나 하면서 이 사건을 정권싸움으로 끌고 가려는 작태는, 정치 위에 우뚝 선 윤리, 정치가 봉사해야 할 가치로서의 윤리를 보지 못하고 이것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경멸하고 거부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인 것이다. 우리는 누가 이 두꺼운 벽을 깨고 나오는지, 새 시대의 파수꾼으로 지켜보고 기다려야 한다.
둘째, 우리가 목마르게 기다리는 새 시대는 민(民)이 종전처럼 관(官)에 눌려 지내는 것이 아니라 활발히 참여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새 시대의 주인을 배출해 내는 건전한 시민운동, 민중운동이 필요하다. 또 이를 통해 참신하고 책임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형성되어야 한다. 박군의 죽음은 뜻밖에도 이점에서 귀중한 활력소를 제공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출발점에서 우리는 박군의 깨끗한 죽음과 정치의 더러운 손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 정치는 정치고 윤리는 윤리다. 속물적 정권싸움에 윤리가 봉사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참으로 위기가 온다. 또 현실적으로 보자면 우리의 정치제도는 지금 가장 취약한 상태에 빠져 있다.
이때 사회갈등이 너무 양극화되면 제도의 파탄이 올지도 모른다. 이 점 다들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기에 앞으로의 시민운동에서 파당적인 정치인을 배제하기로 한 대한변협(大韓辯協)의 결정은 잘 한 것이라고 본다. 또 정당과 의회는 빨리 제 중심을 찾아야 한다.
한편 정부는 절대 과신하지 말고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의 심기는 매우 불편하다. 이것을 가라앉히는 길은 체제 안의 비리를 제거하는 데 스스로 앞장서는 것뿐이다. 행여나 태동하는 시민운동을 원천봉쇄하는 것과 같은 실수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 및 인권은 원래 종교인, 법조인, 지식인, 예술인의 지고의 관심사이다. 이들의 책임과 자율적 역량하에 윤리적 시민운동이 제대로 커 가도록 정부도 선의의 관심을 갖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공업무의 체질개선



다음으로는 다소 오해를 무릅쓰고라도 국내 대공(對共)업무의 합리화, 특히 반공의 윤리화를 주창하고 싶다. 박군의 죽음은 이미 대공업무의 문제점을 여실히 증언하고 있다. 반공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반공’, 혹은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반공’일 뿐이다. 즉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상위의 가치를 침해하는 대공업무의 체질은 단연 개선되어야 한다.
오늘날 시대는 급변하고 있고 사람들의 의식도 놀랄 만큼 향상되고 있다. ‘대공’ 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쉬쉬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모든 것이 합리화되어야 한다. 더욱이 내년에는 소련을 비롯하여 많은 공산권국가 선수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오지 않겠는가? 구시대의 고루한 정책은 새로운 세대에게 거의 아무런 설득력도 없는 듯이 보인다. 반공정책의 탄력화와 윤리화. 여기에 젊은 세대의 타는 갈증을 푸는 하나의 길이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 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는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조선일보(1987년 2월 5일, 한상진)
     2. 서로 믿는 사회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