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함께 즐거워하는 ‘공환’이 사회적 연대 만든다”
작성자   HIST 작성일 2017-03-10 14:59:26 조회수 1296

일로이자 마르칭-한상진 교수 대담

일로이자 마르칭
“브라질은 좌파정권 탄핵 뒤 우파 득세
한국 대학생 경쟁적…공존 가능성 찾아야”

한상진
“문화행사 된 촛불시위 여성이 주도
공감의 정치 통한 평화와 공존 이뤄야”


10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맞선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종착역에 도착할지 모른다. 지난달 27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일로이자 마르칭 교수(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대학)를 7일 서울 관악로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중민재단)에서 만났다. 그는 “광화문 촛불시위를 지켜봤고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행진에도 참여했다”며 “역동적인 한국 시민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0년부터 세계사회학회의 공식 전문학술지 <당대 사회학>(Current Sociology)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르칭 교수는 8일 한국이론사회학회와 중민재단이 연 ‘촛불정국과 사회이론’ 세미나에 참석한 뒤 이튿날 출국했다. <한겨레>는 7일 중민재단에서 마르칭 교수와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중민재단 이사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한상진(이하 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촛불 시민과 태극기 시민의 대결이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을 처음 방문했는데, 어떤 느낌을 받았나?

일로이자 마르칭(이하 마르칭) 3·1절 도심의 촛불시위를 둘러봤고,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3월4일 거리행진에도 참여했다. 그러면서 ‘여성 대통령의 탄핵’ 문제를 생각했다. 브라질도 지난해 8월 여성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탄핵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브라질의 경우, 보수 우익이 권력을 장악했다. 한국과는 정반대다.

한 브라질은 노동자 정당(PT)의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8년을 집권한 후, 같은 정당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뒤를 이었다. 호세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노동자 정당 집권 10년이 되던 해에 국정농단을 이유로 대통령 탄핵 사태가 벌어졌다.

마르칭 호세프 대통령은 정치력이 취약했다. 정치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예산 집행이 불투명했다. 다음해의 예산을 미리 당겨 쓰면서 지출보다 수입이 많아지는 식이었다. 오래된 관행이지만, 집권세력의 부패 문제로 공격받았다. ‘회계 부풀림’(fiscal pedaling)이라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한 그런데 어떻게 탄핵이 이뤄졌는가?

마르칭 브라질에서는 하원과 상원이 탄핵을 결정한다. 호세프 대통령과 집권당은 탄핵 당시 의회의 다수파가 아니었다. 게다가 <글로부> 같은 강력한 보수언론 카르텔이 신문, 방송, 라디오를 독점하여 집권 노동당의 부패를 거세게 공격했다. 상파울루의 거대 경제단체들, 보수적 종교단체들, 법조인들이 탄핵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한 시민들의 대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마르칭 탄핵 찬성 집회가 이어졌다. 경제단체들이 돈과 편의를 제공했고, 보수언론들이 크게 보도했다. 진보진영의 부패를 규탄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동조합, 좌파 사회단체, 운동단체 쪽은 힘이 약했고 이들의 반대 활동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한 두 세력이 거리에서 충돌한 적은 없었는지, 탄핵 직후 브라질 상황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마르칭 양쪽이 다른 날에 따로 집회를 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험은 역동적이고 흥미롭다. ‘촛불 시민’과 ‘태극기 시민’은 의견이 다르지만 폭력을 자제하면서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브라질의 경우, 권력은 완전히 우파로 넘어갔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대중의 복지 지출은 삭감되었으며 교육, 건강, 노동정책은 악화됐다. 브라질은 불평등 정도가 매우 큰 나라다. 상위 5%는 잘살지만 하위 70%는 먹고사는 것 자체가 어렵다. 대통령의 탄핵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탄핵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한 브라질은 진보 정치집단이 탄핵을 받은 셈인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마르칭 진보진영의 약점은 내부 분열이 크고, 신념이 강해 남을 설득하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받은 좌파 정치인과 노동자, 빈민 사이에 심각한 단절이 있다. 노동자들도 자녀만큼은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가난한 주거지역에도 좋은 학교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진보 정당은 이런 문제를 외면한다. 사회적 대화를 못하고 광범한 연대를 추구할 능력이 없다.

한 한국도 진보 세력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지만, 약자를 포용하는 민생정책 대신 이념과 조직으로 정치를 했다. 이들이 집권하면 어떻게 될까, 불안해하는 시민이 많다.

마르칭 한국의 대학생들을 만나 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함께 경쟁심이 강하다. 남보다 앞서가려 한다. 누구나 다 승자가 되고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는 연대를 할 수 없다. 공존하려면 서로의 양보와 희생이 필요하다. 진보진영의 정치과업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약자를 포용하면서 이들을 파트너로 불러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저는 한 교수가 주장해온 중민이론 또는 ‘중도변혁’ 전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과분한 말씀이다. 지난 15년간 한국의 촛불시위에서 여성 참가가 눈에 띈다. 주부들도 자녀와 함께 참여한다. 이에 따라 시위의 성격이 변해, 촛불시위가 일종의 교육현장이나 축제 또는 문화행사가 됐다.

마르칭 여성의 촛불시위 참여는 시사적이다. 계층이나 교육, 정당을 떠나 여성은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 교육, 복지 같은 구체적 삶의 문제에 관심이 높다. 이념화된 진보진영의 결함을 메울 가능성도 어쩌면 발견할 수 있겠다. 한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세계 최첨단이지만 절제되지 않은 감정표출이 심해 소통에 방해가 되는 면도 있지 않은가? 나는 함께 즐거워하는 공환(共歡, conviviality)의 감정을 중시한다. 패권적 문화를 떠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대결적이지만 이런 공존의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저도 이와 비슷한 ‘공감(compathy)의 정치’를 강조하고 싶다. 소통과 협치의 능력이 뛰어난 정치인이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양극화의 ‘위험사회’에서 적자생존의 경쟁 논리만으로는 평화와 공존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칭 대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진보진영의 과제가 분명해지는 듯하다. 이념이나 권력투쟁에 사로잡히기보다 공감정치를 통해 넓은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는 것, 여기에 정치의 미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정리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85863.html#csidx53dfb98a517bdeead43b8877d39b7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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